여울치는 손위의 심장에 나지막히 괴로운 표현을 행한다.
울고 말지어라.
어느 이 허락하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 시간들에
어느 이 웃으며 허가한적 없는 과정으로
누구도 허용치 않은 결과가 남용된 지금에
울고 말지어라.
투명함을 투과한 퉁명함에 돌아선 이들은
다체로운 빛갈을 마셔본적이 없어,
울고 말지어라.
그날은 피곤하다는 느낌의 정도가 지나쳤던 날이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평온이 모두 사라진듯한 몇일이 지난후에야 간신히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110여시간동안 잠을 잘수 없었고, 잠에 들지 못했다. 내 평온이 사라진 그 시각부터 110여시간,
깨어있으나 정신은 반쯤 죽어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극도의 허무를 깨닳았을 때는 이미 집앞에 도착했었고 몸의 피로가 한계에
도달해서 인지 떨리는 손으로 잠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었다. 텅- 빈집. 그것은 어떤 무엇
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거실의 큰 유리를 모두 가리고 있는 짙은 갈색의 커텐으로 집안의
분위기는 음산한 가을밤을 연상케 했었고 5일여의 시간동안 환풍이 되지 않은 공기는 내 지친
머리속까지 눅눅히 만들었다.
피로에 죽어가고 있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짐가방을 쇼파에 아무렇게도 던져놓았고 그대로 내
방의 침대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실의 쇼파에서부터 내 방으로 가는 도중 서 있는 전신
거울에서 내 움직임은 잠시 멈춰설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도 키가 큰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아무도 없다란것에 아무것도 없다라는 묘하고
도 괴이한 연산(演算)을 하게 하였고 그로인해 내 감정은 무수한 구멍이 뚤린듯 했다.
태어나서 다섯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검정색 옷. 그것도 전신을 전부 검은색으로 입은 내 모습은
낯설고도 이질적이였고 무엇보다 검은 눈동자와 발갛게 충혈된 흰자위는 내것이 아닌것처럼
보였다. 창백하다못해 황노란빛을 띄는 피부와 검게 명암진 눈밑의 내 얼굴은 나와 마주하고
있지 않은듯했다. 나를 보고 있지 않은듯한 거울속 내 모습은 어딘가 얼그러진 모습이였다.
거울은 분명 평면일터인데.
' 오 일동안 내 모습을 한번도 보지 않았던가? '
어째서 이렇게까지나 익숙치 않은 모습으로 바뀌었다는걸 알아채지 못했을까. 110시간의 동안
세번의 샤워를 했었고 적어도 열번 이상의 세수를 했다. 샤워실의 탈의실에서도, 화장실의
세면대에서도 거울을 보지 않았던것인가? 단 한번이라도 내 모습을 봤다면 어떤 과정으로 지
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는지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의 시초가 어디서부터인지 잊어버릴정도로 다산(多産)한 생각을 하며 거울에 조금씩 다
가섰다. 거울에 다가설수록 내 눈과 서서히 마주하기 시작했고 거울과 한뼘정도의 거리가 되
었을때 거울 속 눈동자와 직면할수 있었다.
- 대체 거울속 남자의 눈동자는 무엇에 의해 이토록 박살이 났단 말인가.
... 이것은 내가 거울속 내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거울속 내 모습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
샤워를 하는 도중 그간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온것인지 혼돈에 가까운 어지러움과 내장까지
토할정도의 거친 기침으로 한동안 서 있기조차 힘들어서 욕조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 그리고
그 후에 무슨 생각과 약간의 행동을 한듯한데 그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정도의 무게가
있던 행위였는지 아니면 일상 생활에 가까운 평범한 것이였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동안 무언가 했었다는것은 확연히 감지하고 있다.)
샤워실을 나온후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서 침대로
가야지- 어서 침대로 가야지- 하는 음곡없는 움직임으로 내 방에 들어갔다. 그리곤 곧바로
침대로...
털썩 -
◇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난것일까. 무척이나 오래된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의식이 느지막하게
맑아진다. 아마도 그건 최저의 속도이지 않을까. 스위치를 On으로 누름으로써 아무것도 없
던 것이 발동되고 그 발동의 전계가 차츰 이어져 나가서 완성된 On으로 되는것처럼.
침대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맑아질때까지 눈도 뜨지
않고 몸의 어느 부분도 움직이지 않고 숨만 쉰다. 이 행위는 시간이라는 굴레에 속해 있지
않는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지나지 않고 그렇다고 평소의 속도로 시간이 지나가는것도 아니
다. 느낌으로는 그냥 옆에 있는 정도. 굳이 시간을 잴필요도 없고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가능하지도 않는다. 아니지, 이건 처음부터 불가능한것이다. 내가 수면의 세계에서 의식을
타인에게 감응시킨다는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또 다시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 눈을 뜨고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벽쪽으로 돌아누워
자는 버릇이 있어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인건 연아이보리색상의 벽지와 침대의 가장자리.
눈앞에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다시 눈을
감아버리면 곧바로 두번째 수면으로 이어진다. 연아이보리색상의 벽지를 바라보며 두번째
수면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이 게을러지는 지름길이고 그 날의 모든 예정을 뒤틀어버
리는 엄청나게 좋지 않는 것. 하지만 그 유혹이 만만치 않아서 뿌리칠려면 마음을 굳게 먹거나
처음부터 눈을 뜨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 놔야한다. 하지만 나로썬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은 절대 무리임으로 지금의 방침, 즉 무언가에 대해서 집요하게
생각을 하는것으로 정신을 맑으면서 복잡하게 만들어서 수면의 욕구를 없애는것이다.
자, 이제 어느정도 되었으니 자리에서 일어날까,
「 똑, 똑. 」
........ 노크...... 소리...?
『 이모부는 언제든지 도와줄테이니 걱정 하지 말려무나 』
『 당분간은 지내기 힘겨울지 모르니 우리집으로 오도록 하는것은 어떻겠니 』
『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도중엔 말이지, 큰 시련을 겪는게야. 너에겐 그게 될듯 싶구나 』
어째서, 노크소리가?
『 이 사고에 관해선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요 』
잠깐- 그전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것인가......?
『 상현씨, 당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세요 』
『 아무리 충격이 크다 하더라도 넌 젊으니깐 버텨내야한다 』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하늘도 무심하시지... 상현이 혼자 남기고.... 』
『 ... 』
『 ... 』
『 가족을 한번에 전부, 잃다니... 』
ㅡ 그랬다.
『 이상현씨 되십니까. 여긴 중앙종합병원의 응급실입니다 』
『 이현철씨, 최은경씨, 이하현씨가 교통사고로 현재 입실중입니다 』
『 위급한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와주시기 바랍니다 』
수화기로 들려오는 어느 남자의 무덤덤한 말 속엔 깊은 심연을 잡아 끌어올리는 단어들이
있었다. 그것은 선고자의 말.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은 어딘가 비어있었다. 비어 있었기 보단 무언가 큰것에 의해
서 밀려 사라졌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을때의 기억, 머리속에 떠오르는 광경은 내가 받
아들일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섰다.
절망 다음의 감정. 혼란 이상의 이질감. 현실에서 벗어난듯한 광경. 단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결과.
『 .... 어렵습니다. 준비를 하시는것이... 』
내게 그런 말을 건네는 남자는 나의 눈엔 하얀 옷을 입은 지독하게 검은 인물로 각인 되었다.
ㅡ 가짜와도 같은 백 열개의 시간들.
「 상현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니? 」
- 그 시간들이 전부 가짜가 되어버린걸까?
문 밖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로 머리속에서 무언가 뒤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뒤로 밀려난것은 '현실감'이라는 것이겠지.
「 문 열께. 상현아 」
문 밖에서 들려온 살짝 높은 음이면서 매우 차분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분명히.
오일전에 들었던것이 마지막이 되었던 내 어머니, 나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 딸깍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잠깐의 찰나에 내
머리속에선 그 잠깐의 시간에 떠올렸다라고 믿기 힘들정도의 많은 생각이 엉켰다.
- 저 소리는 가짜? 하지만 아니길. 그럼 그 전화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모두 가짜? 그렇
다면 백 열시간 동안의 혼란이 가짜란 말인가. 그렇다면 백 열시간이라고 느낀 시간들이 모두
꿈? 그것은 도피 밖에 되지 않는것인가? 하지만 목소리...는 거짓이, 가짜가 아니다.. 그럼
뭐지? 뭐가 답이 되는것이지?
백 열시간동안의 기억은 뚜렷하다. 현실이였지만 현실감을 지나치는것들 뿐, 하지만 그것은
내 머리속에 기억되는한 현실이 진실이다. 잠깐, 그렇다면 지금의 것은? 지금도 엄연한 현실
인데 현실인 지금에 있을 수 없는것은 그것이 거짓이라는건가.
찰나의 시간. 숨을 한번정도 내쉴정도의 매우 짧은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지난후의 난 괴리감
이라는 거대한 입속에 삼켜지었다.
문의 손잡이가 조심스럽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후 방문이 천천히 열려왔다.
「 ..... 하아...악... 」
가슴의 매우 깊은곳. 그곳이 저려짐과 동시에 엄청난 조임으로 그곳에 있던 숨이 모두 입 밖으
로 쏟아졌다.
「 일어나 있었구나? 」
.... 진짜였다.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도, 낮은 미소를 버금은 얼굴의 내 어머니, 내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단 하루전까지만 하더라도, 눈을 감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의 가장 깊은곳 언제나 있던 것
이 '사라졌다'라는 공허감에 끊임없이 짙은 고뇌를 하던 이유.
불현듯 눈이 아파오며 앞이 미려히 떨리기 시작했다. 가슴의 아픔이 사라짐과 동시에 숨이
거칠어 지고 머리가 징- 하고 운다. 아마도 머리속에서 움직이던 어느 생각들이 모조리 증발
되었기 때문.
「 ....어머...니... 」
진한 숨과 함께 가슴과 목에서부터 한 단어가 힘겹게 올라온다.
「 응? 어머- 」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을때 시야가 한번 큰 물결을 치더니 금세 맑아진다.
- 내 머리속에 기억되는한 진실이 현실이다.
- 현실은 진실이다. 어떠한 오류가 더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심으로 진실이다.
일상적이며 일반적인 아침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신문을 읽음과 동시에 티비의 뉴스를 보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 식탁에 오를 찌게를 마무리 하시고, 여동생 하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내가 가서 깨워야하는 매우 일상적인 아침 풍경.
" 상현아, 하현이가 어제 좀 늦게 잔 모양이더구나. "
거실 쇼파에 기대듯 앉아 계신 아버지께서 신문을 보던 눈을 티비로 옮긴다. 마침 티비에선
오늘의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 최근들어 기상 예보가 맞아 떨어지는 날이 드문건 뭐 어쩌라는건지... "
" 오늘도 혹시 모르니 우산은 가져가세요. "
" 음- 그래야겠지? "
티비를 보며 반쯤은 혼잣말로 이야기 하시는 아버지와 그걸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대답해주
시는 어머니.언제라도 지금의 것들이 특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아침이다.
지금이라는 현실이 머리속의 기억으로 인해 현실감이 외면된 아침풍경. 잠이 들기전까지의
기억이 맞다하면 지금의 모든 일들이 거짓이다.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현실감이 외곡된 지
금, 가장 정확히 현실을 표시해주는것이 시계. 거실의 벽시계는 일곱시 삼십여분을 가르키고
초침이 예민히 1초 단위로 움직인다. 이것마저 내 스스로가 믿질 못한다면 대체 어떠한 현실을
맞의해야만 하는것인가. 대체 어디의 어느부분까지 내가 인정하지 못할정도로 외곡되있
는것인가.
" 상현아- 뭐해, 니 동생 깨우려무나. "
" 아... 예. "
시계를 쳐다보던 나를 어머님께서 별일이라는듯이 쳐다본다.
" 아무리 방학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지. 늦게 자고..... "
....... 아버님의 혼잣말같은 잔소리로, 아니아니 아버님께서 말씀하신것중에 무언가 크게 어긋나
있는 단어를 들었다. 그것은 '방학'이라고 하는것.
내 스스로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지금으로써 내 스스로가 의지하고 있었던것이 시간이라는 기둥
이였으나 아버님의 말씀로 인하여 그것마저 얼그러졌다. 내 나이가 스물넷, 방학이라는것과는
거리가 있는 나이. 대학을 갔다면 그에 해당될순 있지만, 난 대학을 가지 않았다.
머리속이 구겨진 종이처럼 되었을때 거실의 전신거울을 지나쳤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내 스
스로가 구겨진듯했다.
- 작아졌다.
거울로 보게 된 내 모습은 아직 한참 성장중인 청소년기때의 모습이였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한계선인지, 충격일까, 아니면 괴리감일까, 그
것도 아니면 머리속이 굳어버려서인가 뻣뻣히 움직이는 손을 간신히 움직여 하현의 방을 열고
들어갔다. 연갈색의 커튼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노을. 살아날것같은 가을 풍경의 방안 침대에
하현이 앉아있었다.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머금고.
" 어서와. "
" 대체... "
어떠한 물체가 그곳에 자리매김을 한다는것은 '공간'이라는것이 정도의 규율에 맞춰졌다라는
법칙이있다. 즉 공간으로써 존재한다는것이다. 공간이라고해서 그곳이 비어있는것은 절대불
가능하며 그 공간은 어떠한 물질로서 존재가 재확인된다. 그것을 눈이라는 기관으로 습득하고
그 정보를 뇌로써 인지하는것이 일반론이다. 하지만,
" 어떤 표정인지 거울로 보여주고 싶은데? "
사람의 사고는 자의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범주내에서만 유효하게 활동한다. 즉, 그 범주의
안쪽에서만 유영하면서 안주하며 범주에 벗어나는것들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하며 인지가 불
가능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타의로써 영향을 받고 자의로써 변환을 하여 자신의 자아속에 저장한다.
이것이 일반론적인 규정이다.
- 현실은 진실이다. 어떠한 오류가 더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심으로 진실이다.
갈라지거나, 잘라지거나, 분해되거나, 변질되거나, 죽어가는 그런 광경이 아니다. 하현이
앉아있는 주위로 적갈색 무언가가 바싹 마른 합판을 손으로 잡아 찢는것처럼 무수한 파편을
만들어내며 사방으로 뜯어지고 있다.
" 어림잡아 약 10여분정도 되겠네. 아니 그것도 약간 길려나? "
하현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에 시야의 초점이 맞춰진다.
" 5분은 너무 짧고, 그럼 7분 30초정도로 잡으면 될려나? 상현오빠의 의식이 돌아오고 나서
부터 내 방에 들어온 뒤 나와 눈을 마주치기 까지의 시간이 그쯤 될꺼같아. "
가느다란 초점으로 맞춰진 하현은 한글자씩 되씹듯 말한다. 그 목소리가 가짜같은 현실속에
서 칼로 종이를 베어나가듯 날카로운 효과로 정신이 밝아진다.
" 아마 나를 모르는 타인이였다면 수백번은 더 되었을꺼야. 기절하는 횟수가. "
" 무슨... "
" 가족 전부를 예상치 못한 시기에 전부 잃었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모두 죽은지 알았던 가족이
살아있으며 그 살아있는 가족과 자기 자신이 몇년전으로 돌아가 있는데 자기 자신은 모든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다. 또한 몇년전 평소와 같은 일상패턴인 아침에 늦잠자는 동생을 깨우러 오니 동
생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는것이 보통사람이였다면 수백번의 기절하는 횟수에서
기절이 즉사로 이어지는 횟수도 상당할꺼라 생각하는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
생각을 언어로써 변환시켜 전달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하현이 하는말의 대부분이 언어라는것으
로 익혀지지 않고 머리속에서 직접 그려지는걸까.
" 그리고 또 하나. 가족과 자신의 시간은 몇년전으로 돌아온것 같은데 어째서 자기 자신은 몇년
전으로 돌아오기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지금의 시간이 현실이고 현실은 진실이라는
오빠의 생각이 맞다고 하면 왜 오빠는 몇년전으로 돌아온 지금 미래를 기억하는 것일까? "
노련하진 않지만 서두름이 없는 차분함으로 머리속에 무거운 혼돈이 자리잡는다.
" 250번정도부터 반복하는 수를 세길 포기했지만 예상하기론 400번은 넘어갈꺼같아. 눈을 뜨고,
자신의 생각을 인식함과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인정했으며 나와 대화하기까지 수백번의
실패를 했었지. 물론 실패를 했으니 성공할때까지 시간을 반복재생시켰어. 매번 반복할때마다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초조해했지. 무척이나 지루하면서도 긴장되는 묘한 불쾌감이 드는 감정
이였어.
아, 자세히 이야기 해줄까? 그전에 잡생각이 많은 오빠를 배려해서 말해주자면 내 방의 바깥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멈춰놨으니깐 말이야.
시간이라는것은 말이야 흔이들 말하는 3개의 공간적 차원과 1개의 시간적 차원으로 우리가
시공간으로 부르며 절대적이라 말하잖아. 그 중에서도 시간은 제한적이지만 임의적인 변동이
가능해. "
작게 한숨을 쉬며 방안의 윗쪽을 응시한다. 아마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듯 마주한 시선을 어긋
나게 한다.
" 내 말이 두서없이 말을 하더라도 이해해줘. 지금의 내가 사용 가능한 시간은 굉장이 짧고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질만큼 중요한거니까 미리 양해를 바랄께.
양해를 바라는 의미에서 지금 상현오빠에게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줄께. 일단 지금의 현실은
진실이고 가짜가 아니야. 상현오빠에게 있어 지금의 일은 지금으로, 현재로써 인식될터지만
나에겐 40여시간정도가 지나서야 상현오빠의 지금과 만날수 있었지. 이해가 쉽도록 한마디
붙이자면 『내가 나의 시간을 중점에 두고 상현오빠의 시계를 나의 시계에 끌어들여 나의 것
이 되게 한 후 상현오빠의 시간을 부분적으로 반복재생』한거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객체가 지니고 있는 1인칭의 시계와 다인칭의 공간을 시계와 공간으로 분
리 시킨후 시간적 개념인 시계(時界)만을 강제로 나의 시계와 공간으로 끌여들인거야. 즉, 지
금의 오빠는 자기 자신이 유지되고 있던 시계와 공간중에 공간은 잃어버렸고 시계만이 나의
시계와 공간속에서 유지 되고 있는거지.
이해가 되? 당연히 안되지. 설마 이해를 한다고 해서 인정하진 못할꺼야. 하지만 어떻게. 이
미 지금의 현실이 진실인걸.
나, 하현이라는 시계과 공간을 축으로 상현이라는 인간의 모든것이 속해져있고 그 상태로
진행되는거야. "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했으나 말로 내뱉진 못했다. 하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
술을 막으며 말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 말하지 말고 계속 들어. 상현 오빠의 말에 대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나 이하현이라
는 객체의 유효시간을 너무 과소비해서 거의 녹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니깐 말야.
내 주위에서 뭔가 조각나는게 보이지? 그게 나에게 남은 유효시간을 표시하고 있을꺼야. 박
살나고 조각나며 뜯어지고 있어. 그리고 전부 가루가 되면 내 시계는 없어지지.
그러니깐 잔말말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 지금 상현 오빠의 겉모습이나 머리속에 저장된
기억의 이상한점을 무시하고, 밖에 부모님의 상황도 무시해. 다만 내 이야기를 듣는것만 제외
시키란 말이야.
집중하라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아. 집중이라는것은 여러가지의 행위들
중에 한가지 행위에만 주목하는 것이지만 내가 지금 상현 오빠에게 원하는건 그런게 아니야.
다른 여러가지 행위들을 모두 없애버릴테니 내 이야기만 들어. 그리고 이해해. "
하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차분히 입을 모았다.
" 어떠한것을 이해한다는건 자신이 대상의 정보를 인지하고 인식하는것이야. 대상이 가지고 있
는 모든 통체적 의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감지한 후 그 결과물에 대하여 자신이 느낀 감정을 섞어
인정을 하는것이지. 그것이 어떠한 것을 이해한다라는 정의고 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하면. "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나와 마주한 시선을 어긋나게 한다.
" 난, 시간을 이해했어. "
하현의 자신없는 말투. 무언가에 의하여 흔들리고 있다고 느껴지었다.
" 시간에 대하여 알아버린것이 아니였어. 이해했어. 단 두글자로 표현되는 터무니없이 거대하고
섬세하고 불투명한것에 대해 인지하고 인식했어.
하지만 단지 그뿐이야. 그것은 언어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해. 언어로써 성공적인 표현이 완성될수
가 없어. 약어略語에 불과한 조악한 단어들을 조합시켜 문장을 만들어 놓는다 하여도 그것은 미친
시인만이 이해할 수 있을걸. "
차분한 말투로 이질감 가득한 문장들을 토하듯 말한다.
" 무척이나 -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는 표정인데, 아무래도 듣는것보단 보는것이 효과적이겠지? "
" 무슨... "
하현은 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꽃병에 꼽혀있는 무화과 꽃가지을 쥐어든다. '풍부'라는 꽃말이
마음에 든다며 꽂아두었던 꽃가지엔 두개의 열매가 열려있다.
그 순간, '콰지직─ '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의 열매가 터져나갔다. 두개의 열매가 터지면서 무수한
파편이 흩어졌는데 그것은 무화과 열매의 파편이 아니라 무화과의 씨앗들이였다. 놀라서 하현의 얼
굴을 바라보자 하현은 그 씨앗들을 불만족스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내 시계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요구했던것은. "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수백개 단위의 씨앗들이 모두가 살아있는것일까. 하나같이 쪼개어져 몸뚱이를
벌리고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녹색의 떡입들이 작은 소리들을 내며 자라나 잎을 펼쳤다.
괴상한 현상에 어울리듯 이질감 넘치는 작은 소리가 방안에 쏟아진다.
" 아주 약간은 이해 했을꺼라 생각하는데, 오빠? "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수백개의 새싹이 자라났다. 씨앗 하나하나에서 느리지만 분명하고도 선명한 움
직임으로 씨앗껍질을 깨고 연녹색의 떡잎이 헤집고 나와 여린 잎을 펼친다.
" 무척 신기하지? 마치 tv에서 보는것 처럼 수백시간을 녹화해 놓고 그것을 빠르게 재생시킨것 같잖아.
단지 지금 오빠의 눈 앞에 보이는 이 꽃들은 자신들이 가진 시간들이 할애되고 있을 뿐이고, tv에서 본
영상은 편집기술로 단축시킨것이지. 하지만 지금 오빠의 눈앞에 있는 무화과의 새싹들은 영상물이 아
닌 현실에서의 모습이잖아.
오빠의 입장에서 봤을때 이 무화과가 자라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꺼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
잠시 말을 멈춘 하현은 내가 열고 들어온 방문을 손으로 지시하며 눈을 감는다.
" 여기는 나, 이하현의 세계이기 때문이야. "
하현이 말을 끝내자 내 뒤의 방문에서 무언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방문이 변화하고 있
었다. 괴상함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무합판으로 만들어진 방문이 세밀하게 나누어 쪼개지고 있었다. 무
엇이 변화를 하고 있었는지 금방 알 수가 없었지만 연하늘색의 폐인트가 공중으로 분해되어 나타난 나
무합판이 결을 따라 떨어져 나갔다.
변화하는 과정을 눈으로 쫒아가며 보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지만 방문의 나무합판이 분해되어 바
닥으로 떨어지기까지는 몹시 짧은 시간일 것이다. 나무 합판의 잔해들을 쳐다보다 없어진 방문으로 하
여금 방문밖을 자연스레 보게 되었을때, 하현이 말한 마지막 한문장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언뜻 보았을때 무엇도 느끼지 못했지만 짧은 몇초의 인지 끝에 터무니 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하현의
방문 밖은 멈춰 있다. 가장 먼저 보인 아버지의 모습은 신문을 넘기는 중간에 멈춘 부자연스러운 모습
으로 정지되어 있었고 TV화면의 어느 광고 장면도 '정지'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
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임박한 것은 단 한번도 겪지 못했던 이질감과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세계와는 다
르다는 감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방문의 모든 것이 멈춰 있어 좀 더 확인을 하려 방문을 나가자 특이한
현상을 하나 더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시야가 수도 없이 점멸되는 것과 귀로 들리는 소리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현의 방문 밖은 멈춰 있으니 빛과 소리가 그 자리에
정지해 있음으로 내가 이동하는 것에 따라 나에게 효과를 주는 것 같다.
거실을 지나 부엌에 가보니 어머니 역시 싱크대를 보고 있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수돗물 역시 물리법칙을 무시한체 그 자리에 멈춰있다.
모든 물체가 멈춰 있는 것이다. 거실의 광경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시계가, 공기가, 광자光子가 중력자
가, 운동에너지가 모두 멈춰있다. 모두 멈춰 있는 와중에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반응을 하는 것이다.
" 내가 내 방의 밖을 멈춘게 아니라 내 방과 오빠만 유효하게 만든거야. 여기는 나, 이하현의 세계니깐. "
하현의 방 안으로 돌아가자 하현은 침대 위의 벽면에 기대고 앉아있었다. 하현의 주위에서 조각나고 있던
적갈색의 무언가가 아까보다 수량이 줄어들어 있고 그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 그렇다면 오빠. "
목소리에 힘이 없다. 말하는 속도 또한 느려졌다.
" 내가 왜 그랬을까? "
' 무엇을..? ' 이라고 말하려다 문득 떠오른다. 하현과 아버지,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전원 사망했다. 그것이
내 머리속에 기억되고 있는 기록을 재생하여 확인한 결과 현실로 겪은 시간들이다. 하현이 말하고 행동하
는 지금의 현실이 현재로써 진실이다면 하현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어째서
지금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낸것일까.
" 맞아, 대답하지 않는게 오히려... 정답이야. 그 정답은 나만이 알고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에
게도 말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으니깐. "
하현은 숨이 약간 거칠어졌다. 발음도 약간씩 어긋난다.
" 1997년 12월 30일. 쌍둥이인 우리의 생일 다음날때문이야. "
나는 1982년 12월 29일 01시 01분 태어났으며 하현은 같은날 02시 02분에 태어났다. 그럼 하현이 말한 열여
섯째 생일의 다음날 무엇이...
" 그 날 때문에 죽어 없어지기 싫었기 때문이야. "
1997년 12월 30일? 그 날은 나와 하현의 생일 다음날이다.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나.
열여섯이 되는 1997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 하지 못한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때문에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지. 오빠의 머
리속에 기억되고 있는 사고는 실제 있었던 현상이야. 나와 부모님은 트럭과 정면 추돌을 하였고 나는 즉시 코마
상태에 들어갔을꺼야. 외부로부터 접근하는 모든 일들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나의 내부의 현상만이
나를 의식하게 했으니깐. 아니지, 의식이 아닐꺼야. 감성과 감정조차 중지된 그 시각에 내 스스로가 할 수 있었
던 것이 아니라 나, 이하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행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랬기에 지금의 결과를 내 스스로가
납득 할 수 있었으니깐. 내가 아니면 지금의 현상에 대해 누가 설명을 해 줄수 있을까? 그래. 그러니깐 지금의
현상은 내가 한 것이야.
내 육체가 한계점을 돌파한 충격으로 하여금 유효하지 않은 시점에 도달하고 말았을때, 정신과 육체가 갈망하
던 후회의 기억으로 존재가 일반론적인 현상을 거스른 것이겠지. 무엇이 먼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존재가
원하던 거점으로 역행한것은 확실해.
그래서 지금의 신체 나이는 열여섯이 된 것이지. "
그러니깐, 열여섯이 되는 1997년 12월 30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 그런데, 많이 애석하네. "
하현이 말한 의미를 생각하려 고민하고 있을때 하현은 무언가 애석하면서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 내가, 얼마 남지 않았나봐. 헤헤- "
그리곤 슬쩍 미소 지었다. 하현의 평소와도 같은 미소다. 하지만 그 미소를 보는 것도 아주 잠시였다. 하현의 주
위에 있던 무언가들이 몇개조차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 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거야! "
" 내가. "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 흐릿하게 감지된다.
하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 애초에 무리한 상황이였을지도 몰라- 헤헤헤. "
차가운 씁쓸함을 애써 웃으며 말한다. 하현의 눈동자엔 사무치는 폭풍우가 내비친다. 몇개 남아있던 조각들이 차츰
흐려지더니 이내 흩어지듯 뜯어져간다.
" 미안해, 상현오빠. 오빠에게 뒤를 부탁할 수 밖에 없을꺼같아. "
" ... "
상황에 대한 정리도, 이해도 되지 않은 지금에 하현의 말을 듣는 것 이외에 할 수 없다는 것에 깊은 괴로움을 느낀다.
" 여태껏 상현 오빠와 가족으로써 살아왔음에 감사하며, 원망해. 그래, 그런 것에 대해 원망해. 그러니깐 동생의 부탁
하나쯤은 가뿐히 들어줄 수 있을것 같아서 부탁하고 싶어. "
하현의 모습이, 형태가, 웃는 미소가,
" 나를 잊지 말아줘. "
흐릿하게 변질되어 간다. 무언가와 공명하듯 흐릿하게 변화한다.
" 지금을 잊지 말아줘. 지금의 내가 오빠에게 크나큰 부탁을 하고 말았음을 잊지 말아줘. "
또한, 하현의 모습이 뜯어져간다.
" 있잖아. 오빠. "
현상에 대한 감정이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 하현의 외관이 흐릿하게 변질되며 분쇄되어 과정을 감정의 한도가 벗어
난 듯 반응하지 못한다.
" 당신을 ... 진심으로 ... - 하게 된것에 ... 원망해. "
무엇을 해야 할까. 하현은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아주 작은 입자들로 나눠지어 -
그렇게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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